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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맨] 달보다 멀었던 한 남자의 마음

by 오르봉 2025. 4. 21.

달에 닿기까지, 인간이 감당해야 했던 거리

1. 줄거리 요약

 

〈퍼스트맨〉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닙니다. 영화는 ‘한 인간’으로서의 닐 암스트롱이 감당해야 했던 상실과 침묵, 고독과 고통의 여정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따라갑니다.

 

영화는 1961년 시험비행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조종석 속에서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려는 극한의 시도를 통해, 영화는 닐이 단순히 냉정한 과학자가 아닌 ‘무언가를 극복하려는 인간’임을 초반부터 암시합니다. 이후 닐과 그의 아내 재닛(클레어 포이)은 어린 딸 캐런의 병으로 고통받게 됩니다. 딸의 죽음은 그의 삶 전반에 걸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닐이 감정을 봉인한 채 살아가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는 NASA의 ‘제미니 계획’에 지원하고, 끊임없는 훈련과 실패를 거듭합니다. 동료 우주비행사들의 죽음, 잇따른 사고, 여론의 압박 등 여러 벽에 부딪히면서도 그는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 중심에는 “왜 가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확고한 신념보다는, 어쩌면 개인적인 트라우마와 상실을 넘어서는 여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드디어 1969년, 아폴로 11호의 임무가 시작됩니다.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발사대를 떠나 달로 향하고, 긴장과 침묵 속에서 진행되는 착륙 장면은 관객에게 진짜 ‘우주적 고요’를 체험하게 합니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딛는 이 장면은 역사적 사실을 뛰어넘는 감정의 정점으로 다가옵니다. 그가 달 표면에 딸의 팔찌를 몰래 남기는 장면은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를 압축합니다. 이 영화는 “인류의 승리”가 아니라, “개인의 상처와 화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 촬영 배경 및 제작 정보

 

〈퍼스트맨〉은 〈위플래시〉와 〈라라랜드〉로 유명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연출작입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전작들의 감성적 연출과 음악적 호흡을 유지하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하고 절제된 시선을 보여줍니다. 특히 ‘우주’라는 대상을 다루면서도 ‘내면’을 놓치지 않는 연출은 많은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찬사를 받았습니다.

 

촬영은 실제 NASA 훈련장과 미국 전역의 여러 도시에서 이루어졌으며, IMAX 카메라를 사용해 달 착륙 장면을 구현했습니다. 특히 아폴로 11호의 발사 장면은 실제 아카이브 자료와 CG, 세트 촬영을 정교하게 결합한 결과물로, 사운드와 진동까지 전달되는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셔젤 감독은 대규모 스케일의 우주 장면보다도, 좁은 우주선 안의 ‘밀폐된 공간’과 거친 카메라 흔들림으로 오히려 클로스트로포비아적인 현실감을 부각합니다. 우주가 낭만이 아닌 ‘두려움과 불확실성의 공간’임을 강조하는 이 방식은, 기존 우주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정서적 결을 형성합니다.

 

음악은 저스틴 허위츠가 맡았으며, 〈라라랜드〉에서의 감미로운 재즈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클래식 기반 사운드트랙을 선보입니다. 특히 달 표면 장면에서 사용된 “The Landing”과 “Quarantine”은 웅장함과 동시에 인간적인 슬픔을 담은 테마로, 영화 전체의 정서를 견인합니다.

 

라이언 고슬링은 닐 암스트롱 역을 맡아 내면의 고통과 절제를 극단적으로 억누른 인물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냅니다. 그의 연기는 과장 없는 시선, 침묵, 손끝의 움직임에서 오는 감정 전달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입증합니다. 클레어 포이 역시 ‘우주’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닌, ‘가정’이라는 현실에서 느끼는 공포와 갈등을 깊이 있게 소화하며 극의 중심을 단단히 지탱합니다.

 


3. 총평 및 개인적인 감상

 

〈퍼스트맨〉은 흔히 기대되는 영웅 영화의 틀을 철저히 거부합니다. 이 영화에서 닐 암스트롱은 환호받는 아이콘이 아닌, 사랑하는 딸을 잃은 ‘조용한 인간’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가 달에 간 이유를 “과학적 성취”보다는 “감정적 회복”으로 재해석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을 울렸던 장면은 달 표면에서 닐이 몰래 딸의 팔찌를 남기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침묵 속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들어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슬픔, 미완의 사랑, 사별의 고통을 우주라는 광막한 공간에 고요히 내려놓는 상징이었습니다. 이 장면 하나로 영화 전체가 완성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퍼스트맨〉은 “우주에 도달한 인간”보다 “인간의 한계에 도달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우리는 그가 달에 착륙한 것을 보며 박수칠 수 있지만, 영화는 질문합니다. “그는 그 여정에서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회복했는가?” 영화는 끊임없이 ‘거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 인간과 감정 사이의 거리, 가족과의 거리, 자신과의 거리.

 

이 영화는 그 모든 거리의 끝에서 닐이 다시 ‘연결’을 선택하는 장면, 아내와의 무언의 시선 교환으로 마무리됩니다. 말은 없지만,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손끝을 맞대는 그 마지막 컷은 이 영화가 이야기한 모든 것을 요약합니다.

 

〈퍼스트맨〉은 웅장하고, 조용하며, 깊은 영화입니다. 그것은 기술과 업적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약하고도 위대한지를 섬세하게 조명하는 작품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우주를 걷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달을 향해 날아가고, 누군가는 여전히 발사대를 떠나지 못하고 있겠죠. 〈퍼스트맨〉은 그런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날아가고, 누구를 위해 돌아오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