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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그 여름은 이름이 없었다

by 오르봉 2025. 4. 24.

그 여름은 이름이 없었다

1. 줄거리 요약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1980년대 북부 이탈리아의 햇살 가득한 여름, 한 소년과 한 남자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동성애 로맨스가 아닌, 첫사랑의 설렘과 상실, 그리고 성장의 기억을 섬세하게 담아낸 영화입니다.

 

주인공 엘리오는 지적이고 음악적인 감수성이 풍부한 17세 소년입니다. 고고학자인 아버지와 번역가인 어머니와 함께 여름을 보내는 시골 저택에, 대학원생 올리버가 조교로 찾아옵니다. 24세의 올리버는 미국에서 왔고, 건강하고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무심하고 건방져 보이던 그에게 엘리오는 점점 강렬한 호기심과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두 사람은 서서히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긴장감 어린 농담과 시선, 함께한 산책과 수영, 그리고 음악과 문학을 공유하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사랑을 알아갑니다. 하지만 이 관계는 단순한 설렘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불안정한 감정과 사회적 제약, 그리고 서로 다른 삶의 방향은 이 사랑에 한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여름의 끝, 올리버는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엘리오는 그를 역까지 배웅합니다. 그 여정은 짧지만 깊은 감정의 응축이었고, 마지막 포옹 이후 이별은 현실이 됩니다. 그리고 수개월 뒤, 엘리오는 가족과 함께 전화를 받습니다. 전화기 너머 올리버는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영화는 그 통화를 마친 후, 벽난로 앞에 앉아있는 엘리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끝이 납니다. 그의 눈에 고인 눈물은 말없이 관객에게 이야기합니다. 한 여름의 사랑은 지나갔지만,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2. 시각적 서정성과 사운드의 조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감각의 영화로 그려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의 고풍스러운 저택, 햇살이 스며드는 돌길, 과일이 익어가는 나무 아래에서의 대화들—all of these는 스토리를 넘어선 감정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카메라는 클로즈업과 롱테이크를 적절히 활용해 인물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감정의 흐름을 고요하게 담아냅니다. 특히 엘리오가 혼자 피아노를 연주하며 감정을 흘리는 장면은, 말보다 강한 서사로 다가왔습니다. 이 영화에서 ‘침묵’은 오히려 더 큰 대사였습니다.

 

사운드트랙 또한 영화를 지탱하는 주요 축이었습니다. 특히 스핏츠의 ‘Mystery of Love’와 ‘Visions of Gideon’은 등장 인물의 감정을 대변하는 동시에, 관객의 기억에 깊은 잔상을 남겼습니다. 엘리오가 벽난로 앞에서 눈물짓는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Visions of Gideon'은 이별의 고통과 아름다웠던 여름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며, 음악 그 자체가 엔딩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3. 개인적인 감상 –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감정의 조각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첫사랑의 본질을 이렇게 묻습니다. 사랑은 이뤄져야만 의미가 있는가? 아니면, 사라졌어도 우리가 느꼈던 감정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한가?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첫사랑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은 흔히 "함께 했는가"가 아니라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로 남습니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는 짧았고, 미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름 동안의 감정만큼은 그들의 인생을, 그리고 제 삶까지도 뒤흔들 만큼 진실했습니다.

 

엘리오가 끝내 올리버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던 장면—“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은 감정의 극한을 말없이 넘나들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되기를 원했고, 동시에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했습니다. 그것은 소유가 아닌 동일화였고, 사랑이자 존재의 융합이었습니다.

 


4. 독창적인 해석 – 우리가 사랑을 겪는 이유는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사랑에 대한 정형화된 결말을 거부합니다. 해피엔딩도 아니고, 비극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사랑을 '경험 그 자체'로 정의합니다. 엘리오의 아버지가 말했듯, “마음이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 감정을 줄이다 보면, 결국 우리가 가진 좋은 것도 같이 사라진다.”

 

우리는 흔히 사랑의 결과를 따지지만, 이 영화는 말합니다. 사랑은 결과가 아니라 감각이고, 증명이고, 삶이라는 시간 속에서 자신이 ‘존재했다’는 증거라고. 엘리오가 눈물 흘리는 장면이 아름다운 건, 그가 아직 사랑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직 살아 있고, 아직도 그 여름의 열기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서로를 완성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그들의 일부가 되어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쩌면 이뤄지지 않은 사랑 중 가장 완전한 사랑의 형태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