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카타카] 결함으로 도달한 우주

by 오르봉 2025. 4. 23.

결함으로 도달한 우주

1. 줄거리 요약

 

〈가타카〉는 유전자 조작이 일상이 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의 ‘완벽함’과 ‘운명’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SF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빈센트 프리먼은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열등 유전자’ 보유자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유전자 스캔을 통해 수명, 질병 확률, 신체적 한계를 모두 예측받으며 그는 사회에서 ‘유전자 차별’의 경계선에 서게 됩니다.

 

이 세계에서 모든 것은 DNA로 결정됩니다. 직장, 보험, 인간관계, 사랑—모든 것이 유전자 정보에 기반해 선택됩니다. 이러한 체계 속에서 빈센트는 우주비행사를 꿈꾸지만, 그의 유전자는 그 꿈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시력은 나쁘고 심장질환의 위험이 있으며, 기대 수명도 평균 이하여서 그는 일찍부터 ‘도달 불가능한 존재’로 분류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유전적으로 완벽한 사람인 제롬 유진 모로의 신분을 빌려 ‘가타카’ 항공우주국에 입사합니다. 제롬은 수영 선수 출신으로 모든 신체 조건이 우수하지만, 사고로 인해 하반신 마비가 된 인물입니다. 빈센트는 그의 혈액, 소변, 머리카락, 피부 세포를 매일같이 철저히 위장하며 완벽한 삶을 연기합니다.

 

영화의 중심은, 빈센트가 최종 우주탐사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선발된 후, 그 준비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입니다. 탐사센터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빈센트의 정체가 들통날 위기에 놓입니다. 하지만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낸 빈센트는 마침내 우주선에 오릅니다. 그리고 출발 직전, 실제 제롬은 자신이 가진 모든 유전자의 샘플과 함께, 빈센트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납니다.

 

 


2. 연출과 미래 사회의 메커니즘

 

〈가타카〉는 SF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과장된 미래기술보다는 차갑고 현실적인 디스토피아를 그려냅니다. 영화 속 세계는 현란한 네온과 로봇 대신, 무채색의 유니폼과 관리체계, 그리고 생물학적 데이터로 구성된 사회입니다. 유전자 정보가 신분증보다 더 중요한 신분 증명 수단이 되었고, 사람들은 매일같이 지문 대신 혈액을 뽑고, 소변 검사를 받습니다.

 

앤드루 니콜 감독은 감정과 서사의 밀도를 차가운 시각적 톤으로 잡아내는 연출을 선보입니다. 거의 단색에 가까운 색보정, 대칭적인 구도, 반복되는 일상 장면은 통제된 삶과 억압된 감정, 그리고 그 틀을 깨고 싶은 빈센트의 내면을 드러냅니다.

 

가장 인상 깊은 연출 중 하나는 빈센트가 아침마다 자신의 DNA 흔적을 제거하는 장면입니다. 손톱 밑을 문지르고, 머리카락을 제거하며, 일말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이 세계에서 그는 매일 ‘자신이 아닌 사람’이 되기 위해 삶을 세밀하게 조작합니다. 이 반복은 그의 존재가 ‘위장’되어야만 하는 사회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3. 개인적인 감상 – 태어남보다 중요한 건 의지입니다

 

〈가타카〉는 개인적으로 매우 깊은 울림을 남긴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차별’이나 ‘유전자 윤리’를 다루는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훨씬 더 개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꿈꾸는 것에 내 출신은 상관이 있는가?”

 

빈센트는 태어났을 때부터 ‘불가능’이라는 낙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꿈을 유전자 정보에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의지는 예측을 넘어섰고, 그의 선택은 제한을 뚫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느꼈습니다.

 

특히 빈센트가 형과 바다에서 수영시합을 하며 “나는 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지금도 제 인생의 좌우명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 말은 단지 무모한 배짱이 아니라, 자기 삶을 되돌릴 수 없다는 각오로 앞을 향해 나아가는 진심이었습니다.

 


4. 독창적인 해석 – 유전자는 가능성을 말하지만, 인간은 의지로 결정된다

 

〈가타카〉의 가장 위대한 점은, 인간의 ‘조건’이 아닌 ‘선택’에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유전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실제로 더 행복하거나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결함투성이인 사람이 더 치열하게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빈센트와 제롬의 관계는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모든 조건을 갖춘 제롬은 좌절했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빈센트는 전진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결국 서로의 결핍을 통해 서로를 완성시켰습니다.

 

오늘날 사회는 다시 우열과 기준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학벌, 외모, 성격, 배경, 신체적 조건 등 수많은 ‘스펙’이 여전히 사람의 가능성을 예단합니다. 〈가타카〉는 그 예단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결함은 실패의 전조가 아니라, 열망의 동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강하게 증명합니다.

 

이 영화가 끝난 후, 나 자신의 유전자나 환경을 탓할 수 없다는 불편한 자각이 찾아옵니다. 대신 남는 건 단 하나의 질문입니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는가?” 빈센트는 ‘최선’ 그 자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