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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나무의 씨앗, 2025] 이란 현대사의 균열과 여성 해방의 서사

by 오르봉 2025. 6. 6.

여성 해방의 씨앗, 가족과 사회를 흔들다

1. 줄거리


《신성한 나무의 씨앗(The Seed of the Sacred Fig)》은 2025년 6월 국내 개봉한 이란·독일·프랑스 합작 드라마로,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습니다. 영화는 2022년 이란에서 실제로 벌어진 ‘히잡 반대 시위’와 그 도화선이 된 마흐사 아미니 사건을 모티브로, 한 가족의 균열을 통해 이란 사회의 억압과 변화, 여성 해방의 가능성을 깊이 있게 그려냅니다.

주인공 이만(미사그 자레)은 테헤란 혁명법원의 수사판사로 승진하며 가족의 자랑이 됩니다. 아내 나즈메(소헤일라 고레스타니)와 딸 레즈반(마사 로스타미), 사나(세타레 말레키)는 더 넓은 집과 각자의 방을 꿈꾸며 아버지의 승진을 기뻐합니다. 하지만 테헤란에서는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계기로 ‘여성, 삶, 자유’(WOMEN, LIFE, FREEDOM)를 외치는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가 시작되고, 이만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정부로부터 권총까지 지급받습니다.

이만은 자신이 법률적 판단이 아니라, 상관이 내민 판결문에 무조건 서명하는 역할임을 깨닫고 혼란에 빠집니다. 그는 가족에게 자신의 직무를 밝힐 수 없고, 매일 수백 건의 판결서에 서명하며 점점 편집증과 불안에 시달립니다. 한편, 대학생 딸 레즈반은 SNS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시위 현장의 진실을 접하고, 아버지의 권위적 태도와 국가의 폭력에 점점 반감을 갖게 됩니다. 어머니 나즈메 역시 점차 딸들의 편에 서며, 가족 내 세대와 가치관의 균열이 깊어집니다.

어느 날, 이만의 권총이 집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는 가족 중 누군가가 가져갔다고 확신합니다. 이만은 아내와 두 딸을 동료에게 데려가 심문하고, 가족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집니다. 그의 이름과 사진, 주소가 SNS에 유출되면서 가족은 고향 산골로 피신하게 되고, 그곳에서 이만은 가족을 ‘재판’에 부치며 캠코더로 심문까지 합니다.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아버지의 폭력과 통제 속에서, 딸 사나는 권총을 들고 탈출을 감행합니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 벌어지는 추격 끝에, 사나는 아버지를 향해 총을 겨누지만 망설이다가 발밑을 향해 방아쇠를 당깁니다. 땅이 꺼지며 이만은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영화는 머리카락을 드러내고 히잡을 흔드는 여성 시위대의 실제 영상으로 마무리됩니다.

 


2. 제작 및 촬영 배경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이 이란 정부의 감시와 탄압을 뚫고 완성한 영화입니다. 감독은 실제로 촬영 중 체포 위협과 검열, 배우·스태프에 대한 압박, 출연 배우의 출국 금지 등 극한의 상황에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시나리오도 비공식적으로 진행하고, 외부 촬영은 국영방송 스타일의 복장으로 위장하거나 원거리에서 연출하는 등 치밀한 위장 전략을 동원했습니다.

감독은 “이란 감옥에서 조사를 받던 중, 나를 취조하는 사람의 일상과 가족이 궁금해졌다”는 질문에서 출발해, 국가 권력의 말단 집행자인 ‘수사판사’의 시선으로 사회와 가족의 균열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영화는 대부분 실내 세트에서 촬영됐으며, 가족의 집, 법원, 고향 산골의 흙집 등 제한된 공간을 통해 이란 사회의 폐쇄성과 억압, 그리고 가족 내 불신과 공포를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감독은 인도보리수의 씨앗이 다른 나무 위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결국 숙주를 질식시키며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데서 영화의 제목을 착안했습니다. 이는 여성들의 외침이 부패한 권력과 가부장제를 질식시킬 것이라는 상징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3. 총평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단순한 사회 비판 영화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최소 단위에서 시작된 균열이 어떻게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장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영화는 히잡 착용, 여성 억압, 세대 갈등, 가부장제, 국가 폭력 등 이란 사회의 민감한 문제를 한 가족의 붕괴와 재구성을 통해 밀도 있게 그려냅니다.

특히, 아버지 이만이 권위와 두려움, 그리고 국가의 명령에 순응하다가 점차 가족을 의심하고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과정, 그리고 딸들과 아내가 연대해 스스로를 지키는 모습은 이란 여성들의 현실과 저항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의 마지막, 여성 시위대의 실제 영상은 이 작품이 단지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란 사회 전체, 나아가 세계의 억압받는 여성들에게 바치는 연대와 해방의 선언임을 분명히 합니다.

라술로프 감독은 이 영화로 인해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칸영화제 기간 망명을 택해야 했으며, 출연 배우들도 법적 소송과 출국 금지 등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202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2025 아시아필름어워즈 각본상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뜨거운 찬사를 받으며, 예술이 가진 저항의 힘과 사회적 울림을 입증했습니다.

러닝타임 2시간 48분에 달하는 이 작품은 결코 쉽지 않은 영화지만, “지금 반드시 목격해야 할, 올해 가장 용감한 걸작”이라는 평가처럼, 억압과 저항, 진실과 거짓, 사랑과 불신, 그리고 변화의 씨앗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질문하게 만드는 강렬한 체험을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