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요약
〈레버넌트〉는 1820년대 북미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실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죽음과 생존, 복수와 구원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본성을 강렬하게 그려낸 영화입니다. 주인공 휴 글래스는 사냥꾼이자 안내자로, 아들 혹은 동료들과 함께 모피 사냥을 위해 원주민 지역을 탐험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곰의 습격으로 휴는 치명상을 입습니다. 죽을 위기에 처한 그를 동료들은 이송하기 어렵다 판단하고, 그의 아들 호크와 존 피츠제럴드, 브리저 세 사람에게 남겨 그를 돌보게 합니다. 그러나 피츠제럴드는 이 상황이 귀찮고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여, 결국 글래스를 살해하지는 못하지만 구덩이에 생매장하고 떠납니다. 이 과정에서 호크는 피츠제럴드의 손에 목숨을 잃습니다.
글래스는 믿을 수 없는 생존 본능으로 눈과 얼음의 광야를 기어 다니며 살아남습니다. 그가 견디는 이유는 단 하나—죽은 아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벌레처럼 기어 다니며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추위와 굶주림, 적대적인 원주민의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습니다.
결국 글래스는 피츠제럴드와 다시 마주하게 되며, 처절한 사투 끝에 복수를 완수합니다. 하지만 그는 복수의 완성보다, 그 복수를 멈추는 순간에 진짜 자유를 경험합니다. 아들의 환영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낸 그는 눈 덮인 황야 속에서 홀로 남게 되며, 카메라는 그의 숨결과 함께 영화의 끝을 장식합니다.
2. 생존의 리얼리즘, 자연의 폭력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레버넌트〉에서 자연을 그 어떤 조연보다 강렬하게 연출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인간을 시험하고, 변화시키며, 정화시키는 신적인 존재로 기능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휴 글래스의 여정과 완벽하게 맞물립니다.
카메라는 오직 자연광만을 사용하여 촬영되었으며, 이를 통해 북미의 광활한 설원과 산맥, 강의 거친 질감과 추위의 공기가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이냐리투 감독은 CG의 도움 없이 실제 환경에서의 촬영을 고집하며, ‘진짜 죽음을 건 생존기’를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곰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은 그 현실감과 잔인함으로 인해 관객을 압도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액션 시퀀스가 아니라, 자연이라는 존재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무자비함을 드러낸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작고 무력하며, 그 안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기적임을 영화는 강조합니다.
3. 개인적인 감상 – 복수가 아닌 삶을 위한 분투
〈레버넌트〉는 처음 볼 때는 복수극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되새길수록 이 영화는 복수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영화는 사실상 "죽어도 되는 이유"가 아닌 "살아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글래스는 자신의 고통을 복수로 해소하려는 듯 보였지만, 그의 여정은 점점 복수에서 이탈해 갔습니다. 피를 흘리고, 몸이 부서지고, 눈 속에서 울부짖는 그 순간에도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아들의 이름을 되뇌며, 그 존재만으로 자신을 붙잡았습니다. 그 끈은 증오가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남은 장면은 눈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아들의 환영을 떠나보내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글래스는 더 이상 복수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상실을 견디고 이겨낸 인간의 표상으로 거듭났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지닌 진짜 힘이자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4. 독창적인 해석 – 인간은 왜 살아남는가
〈레버넌트〉는 전통적인 복수극의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철학적인 질문이 자리합니다. “우리는 왜 살아남으려 하는가?” 많은 영화가 복수를 다루지만, 이 영화는 복수를 완성하는 것이 아닌, 복수 이후의 공허함까지 포함한 인간의 본능과 정체성을 다룹니다.
휴 글래스는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난 자, 다시 말해 ‘레버넌트’입니다. 그가 살아남은 이유는 단지 복수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살아있기에 아들을 기억할 수 있었고, 그 기억은 그의 행동을 정화시켰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죽음보다 더 깊은 생의 의지’를 이야기합니다. 자연은 잔인하지만, 그 안에서도 인간은 관계와 감정을 잊지 않고 살아갑니다. 삶의 목적은 복수도, 승리도 아닌, 자신을 증명하는 시간임을 글래스는 끝내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