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그녀가 죽었다》는 관음증과 SNS 허위 이미지, 그리고 뒤틀린 인간관계가 얽힌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주인공 구정태(변요한)는 평범한 부동산 중개인이지만, 남의 집을 몰래 드나들며 그들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기이한 취미를 지녔습니다. 그는 고객이 맡긴 열쇠를 이용해 집에 들어가 전구를 갈아주거나 세면대를 고쳐주는 등 ‘나쁜 짓은 하지 않는다’는 자기 합리화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집주인의 물건을 전리품 삼아 챙기고, 집안 곳곳을 사진으로 남기는 등 점점 더 위험한 선을 넘나듭니다.
정태의 다음 타깃은 44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기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입니다. 소라는 비건, 동물보호, 선행 등으로 ‘완벽한 삶’을 연출하지만, 실상은 술집 접대부, 사기, 범죄 행각까지 불사하는 이중적 인물입니다. 정태는 소라의 집을 몰래 드나들며 그녀의 일상을 관찰하고, 소라 역시 정태의 존재를 어렴풋이 감지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태는 소라의 집을 찾았다가 소파에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소라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당황한 정태는 자신이 용의자로 몰릴까 두려워 현장을 도망치고, 다른 고객을 데려와 시신 발견을 유도하려 하지만, 그 사이 시체는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이후 정태는 자신을 협박하는 메시지와 사진, 위협적인 사건들에 시달리며 점점 불안에 휩싸입니다. 한소라의 실종 신고가 접수되고, 강력반 형사 오영주(이엘)가 수사에 착수하면서 정태는 유력한 용의자가 됩니다.
정태는 자신을 둘러싼 의심을 벗기 위해 소라의 SNS와 주변 인물들을 추적하며 진범을 찾기 시작합니다. 수사 과정에서 소라의 과거와 그녀를 둘러싼 다양한 비밀, 그리고 그녀가 정태를 덫에 빠뜨리려 했던 계획까지 드러나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집니다. 결말부에서 소라는 오형사에게 체포되고, 정태 역시 불법 침입 등의 혐의로 짧은 수감 생활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태는 자신을 믿어준 오형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지만, 오형사는 “경찰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담담히 답합니다.
이 영화는 ‘보는 자’와 ‘보여주는 자’, 그리고 그 사이의 오해와 왜곡, SNS 시대의 시선과 진실을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2. 촬영 배경
《그녀가 죽었다》는 도시의 평범한 일상과 그 이면에 숨은 불안, 그리고 SNS가 만들어낸 허위의 세계를 현실적으로 담아냅니다. 촬영은 서울 도심의 부동산 사무실, 아파트 단지, 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인플루언서의 집 등, 현대인의 일상 공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공간들은 주인공의 관음증적 시선과, 소라가 연출하는 ‘완벽한 삶’의 허상을 효과적으로 대비시킵니다.
감독 김세휘는 일상과 범죄,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경계에서 불안과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특히, 정태가 집을 몰래 드나들며 남긴 사진과 전리품, 그리고 거대한 창고에 쌓인 물건들은 그의 일탈과 집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소라의 집은 밝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달리, 곳곳에 숨은 비밀과 불안의 징후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CCTV, 스마트폰, SNS 피드 등 현대적 감시와 노출의 도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정태의 관찰과 소라의 연출, 그리고 형사의 수사가 서로 교차하며, 관객은 마치 ‘누군가의 시선’으로 영화를 따라가게 됩니다. 이로써 영화는 현대 사회의 불안, 프라이버시의 경계, 그리고 SNS가 만들어내는 허구와 진실의 충돌을 시각적으로 구현합니다.
3. 총평
《그녀가 죽었다》는 단순한 범죄 미스터리를 넘어, ‘시선’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입니다. 관음증적 취미를 가진 부동산 중개인과, 허위의 삶을 연출하는 인플루언서,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회의 시선과 오해가 맞물리며, 영화는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습니다. 변요한은 소심하고 불안한 정태의 내면을 섬세하게 연기했고, 신혜선은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한소라의 이중성을 강렬하게 그려냅니다.
영화는 “보는 자와 보여주는 자, 그리고 그 사이의 오해”라는 메시지를 통해, SNS 시대의 진실과 거짓, 그리고 인간관계의 불안정함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범죄의 실체보다, 그 범죄를 둘러싼 시선과 오해, 그리고 현대인의 고립과 불안을 더 깊이 조명합니다. 결말에서 두 주인공 모두 완벽한 피해자도, 완전한 가해자도 아닌, 어딘가 비윤리적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남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시대적 공감, 현실적 공간감,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 그리고 마지막까지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어우러져, 《그녀가 죽었다》는 2024년 한국 미스터리 스릴러의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